제 머리카락은 매우 가늘어서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지 않으면 지반 약한 웅덩이 처럼 푹 가라앉습니다.
출근시간에 쫓겨 마땅히 드라이도 하지 못하는 날에는 하루종일 머리에 신경쓰느라 맨 정신을 팝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생애 두 번째 파마를 결심하고 자주 가는 미용실에 들렀습니다.
처음 생각은 '뽀글이'(일명 아줌마 파마)였는데 막상 거울 앞에 앉으니 주저하게 되더군요.
조금 강한 웨이브 파마를 해달라고 주문하고
파마를 말고 비닐 보자기를 둘러 쓰고 UFO 처럼 빙글대는 이상한 기계 아래 앉으니 따분해졌습니다.
직원에게 적당한 소설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을 가져다 달라 했더니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툭하고 던져 주더군요.
먼저부터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책이었는데
지난주 작가가 무릎팍도사에서 보여 주었던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반해 책을 쥐게 되었습니다.
- 바리데기ㅣ 황석영 저 ㅣ 창작과비평사 -
그 시간 동안 눈 몇 번 꿈쩍하고 반 정도를 해치웠지요. 다 읽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미용실 문을 나설 때 소설 속 주인공 바리가 내 뒤를 종종걸음치며 따라오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싸이더스의 대표 차승재 씨는 이 책을 읽고 한 번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긴장감과 감동을 안겨준 소설이라고 극찬했다죠. 책을 팔아먹기 위한 다 그렇고 그런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일곱째 딸로 태어난 주인공 바리의 힘겨운 여정을 따라 펼쳐지는 속도감있는 스토리는 웃음과 감동을 번가르며 잔잔하게 울렸습니다.
산나물을 캐는 중에 스르를 쓰러지는 할머니의 죽음이 담긴 책장에서는 제 마음도 따라 아련해졌습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해 바리의 여정길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오늘 당장 서점에 달려가 사랑스런 바리를 만나야겠습니다.
곱슬곱슬 파마머리가 풀려 바리의 이름까지 희미해지면 큰일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