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 ㅣ 경 ㅣ 들/가까운 풍경들

서울 이야기

전 원래가 서울 사람이 아닙니다.
6.25도 피해갔다는 경기도 어느 산골에서 자라 산딸기며 오디(뽕나무 열매), 찔레,
셤대(맛이 매우 신 식물로 정식명칭은 모르겠네요), 돼지감자 등을 간식거리로 삼았었죠.
회사동료나 친구들에게 제가 자란 이야기를 하면 무슨 60년대 사람이냐구 혀를 끌끌 찹니다만,
맹세코 저 어릴적은 라면 하나에 온 가족이 목숨걸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코찔찔이 촌놈 티 팍팍 내는 제가 서울에 올라온 것은 2000년이었습니다.
2000년 11월 서울에 처음 올라와 부랴부랴 원룸을 계약하고 둥지를 틀었는데
그때 맨 처음 고속터미널에서 맡았던 서울의 냄새를 전 아직 잊지를 못합니다.
뭐랄까요. 마치 안개에 둘러 싸인 듯 잿빛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마천루.
그 사이를 가르는 퀘퀘한 바람의 냄새.
서울은 제게 이방인의 도시였고 낯선 하늘 싱그러움과는 거리가 먼 답답함의 도시였습니다.
꽉 막힌 상자 속에 다람쥐마냥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람들이 마치 기계처럼 느껴졌었죠.

그리고 벌써 8년이 흘렀네요.
8년을 서울에서 지내면서 이젠 서울이 좋아졌습니다.
바쁘게 종종걸음치는 여유 없는 사람들이 당연지사 제 일상이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길 반포대교를 건너면서 잿빛하늘에 마음이 좋아졌지요.
어디를 가도 도로는 꽉 막혀있고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바글바글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허전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곤 했죠.
(일요일 아침 강남대로를 가로질러 차를 몰면 황량한 도로 풍경에 스스로 황망해 지기도 합니다만.)
간사하고 변덕스러운 것이 사람인지라
2008년 서울은 제게도 최소한의 안식이 되는 도시입니다.

- 청계천(캐논 20D / 50mm F1.4) -

서울에 청계천을 다시 복원한다고 했을때 사실 좀 답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몰아치는 공무원들과 생계를 지키려 이를 악물던 상인들의 싸움. 세상은 힘 있는 자의 편이라고 결국엔 MB시장의 최대 공적으로 기록되었지만
전 아직도 청계천에 대해선 애정이 없습니다.

인공적인 냄새 폴폴 풍기는 시멘트에 조명들. 풀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고기들. 물들. 모든게 그냥 잘 닦여진 조형물로만 여겨지거든요.  위 사진은 프리랜서 생활 하면서 일 때문에 찍은 사진입니다. 삼각대를 가지고 가지 않아 그냥 손각대로 찍은 사진인데 나름 원하던 그림이 나왔습니다.

- 한강(canU폰 촬영) -



- 한강 고수부지(캐논 20D, 135mm F2.8L) -


한강. 어떤 하늘 어떤 배경으로 찍어도 그림이 됩니다.
위 사진은 강변북로 운전 중, 잠시 차가 막힌 틈을 타  가지고 있던 캔유폰으로 담은 사진입니다.
푸른 저녁하늘과 한강의 물빛이 닮았네요. 흔들리는 가로등의 불빛이 그저 애처롭기만 합니다.
제 미니홈피 사진 아래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네요.

흔들리지말자.
어리석게흔들리지말자.
한자리에서뚝뚝힘에겨워도
어리숙하게고개숙이며흔들리지말자.

시간이좋다.
너를위한시간이좋다.
어디든무엇을하든시간이있어
좀더씩씩하고강해질수있는기회는많다.

세상.열정.그건아무것.... 이다.<봄>

그 아래 3장의 사진은 정말 추운 겨울 저녁에 촬영한겁니다.
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가며 손을 호호대고 찍은 사진들인지라 더 애착이 가네요.
서울도 저런 하늘을 보여 주는구나 내심 감탄을 했던 저녁이었지만
덕분에 지독한 감기를 선물로 받았죠.

- 한옥마을(캐논20D, 50mm F1.4) -


남산 한옥마을입니다. 비가 내렸었죠. 계절이 바뀔 때, 그러니까 봄, 가을로 가는 길목에 자주 찾는 곳입니다.
한옥마을에 정말로 한국의 마음과 정취가 있느냐 없느냐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때 그 느낌을 즐길 뿐이죠. 충무로를 한 바퀴 휘~ 돌고 잠시 마음의 점을 찍기에 좋은 곳이죠.

- 하늘공원(캐논20D, 50mm F1.4)


하늘공원도 사진찍기엔 그만이죠.
특히 요즘같이 억새며 코스모스며 하늘하늘 바람의 춤을 추는 날이면 더없이 훌륭한 명소입니다.
위 사진만 보고는 여기가 하늘공원인지 어딘지 감을 잡을 수는 없지요.
하늘공원 찍은 사진들이 몇 장 더 있긴 합니다만 전 그냥 아웃포커싱 된 꽃 잎의 이미지가 좋네요.

서울이야기라고 제목은 거창한데 역시나 제 필력과 인내심이 문제네요.
한때 사진에 막 빠져 들을 때 SOS(Soul Of Seoul) 프로젝트를 기획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매우 단순한 일상들을 카메라에 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저 또한 일상에 쫓기는지라 단 10여장의 사진만 남긴 채 접었더랬습니다.
물론.. 그 프로젝트는 아직 ing 중입니다.
제겐 주먹만한 캔유폰(파파라치폰이라 불리는 500만화소의 폰)과 또 그만한 T3(콘탁스) 똑딱이가 있으니까요.
20D요? 당근 있지요. 근데... 사실 너무. 무  / 겁 / 네 / 요 /

마지막 사진 한장 더 올리면서 오늘은 여기서 총총 해봅니다.
마지막 사진의 촬영지는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