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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 ㅣ 경 ㅣ 들/가까운 풍경들

1026 창덕궁의 가을

서울 단풍명소로 72곳이 선정됐다죠. 리스트를 쭈욱 훑어보니 낯익은 곳이 많더군요.
제 집과 아주 가까운 양재 시민의 숲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고
양재천을 따라 동굴처럼 펼쳐진 메타스쿼이어 길은 요즘 새로이 단장한 조명과 카페들로
낮보다 밤이 더 유명한 길이 되었죠.
여기에 덕수궁길이며 가로수길, 남산 소월길 등은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아~'할만한 단풍의 명소입니다.

뉴스에 따르면 이번 주 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해 11월까지 이어진다고 하는데
제 경혐(그닥 신뢰가 충분히 가는 경험은 아니지만)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몇 번 정도의 서리가 더 내리고 '아.. 겨울이 왔나봐' 할 정도의 '에는' 추위가 겹쳐야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사진에 담을 수 있더군요.

아침에 부시시한 얼굴로 집을 나서며 창덕궁으로 향하는 길
머릿속엔 '아직 이른데...' 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제 막 사진에 재미를 붙인 일행을 태우고 궁으로 향합니다.
오전 내내 날씨는 너무 좋아 말갛게 하늘을 보인 하루.

창덕궁의 옥류천(후원이 있는 그 유명한 곳으로 미리 예약을 하거나 한 시간 전 현장발매분을 구해야 볼 수 있는)을
특별 관람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개인적으로 창덕궁은 벌써 세번째 관람이었지요.
이른 봄에 한 번, 매우 더운 여름에 한 번, 그리고 오늘.
새 잎이 새록새록한 낙선재(현종이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했던 공간으로 단청을 하지 않았지요)의 봄과
새소리 바람소리가 정겹던 부용지(규장각으로 유명한 주합로가 있는 연못)의 여름을 맛보았으니
알록달록한 옥류천의 가을이 내심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너무 일렀습니다.

단풍명소랍시고 서울시가 너무 일찍 72곳 중에 창덕궁을 끼어 넣은 것이 화근이었을까요.
애시당초 10월 말 서울 한 복판에서 최고 절정의 단풍을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기대에 대한 실망이 덜 했던 까닭입니다.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볼 것이 영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몇 개의 단풍나무에서는 성급하게 자기 불 꽃을 마구마구 태우고 있었으니까요.
날씨도 좋고 하늘도 좋고 단풍나무를 가르는 '스삭스삭' 바람도 좋은 날이었습니다.
옥류천은 창덕궁의 북쪽 깊은 골짜기, 후원에 흐르는 개울입니다.
인조 14년 널찍한 바위인 소요암 위에 U자형 홈을 파서 물을 돌게 해
술잔을 띄운 후 술잔이 돌아올 때까지 시를 지며 풍류를 즐긴 곳이지요.
잔뜩 기대를 안고 옥류천을 찾는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 법하게 매우 소박하고 소담합니다.
가을에 제가 후원을 찾는 이유는 옥류천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옥류천에 다다르는 과정 곳곳 눈부시게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 위해서죠.

10월 26일 저는 그렇게 창덕궁 옥류천 2시간 관람을 마치고
아주 잠깐 시민의 숲을 갈까 고민하다가 잔뜩 구름 머금은 하늘 빛에 굴복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아직 다 무르익지 않은 창덕궁의 가을이지만 11월 '가을의 클라이맥스'를 기다리며
비루한 사진 몇 장 올려드립니다.

p.s  l  덧붙여 어찌하면 단풍사진을 더 잘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나름 터득한 지식을 풀어놓자면
1. 날씨가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단풍사진의 80% 이상은 햇살과 함께 해야 하지요.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도 나름 운치가 있지만 화사한 단풍을 찍으시려면 햇살 좋은 날을 택하세요.
2. 광각/표준 보다는 망원렌즈가 유리합니다.
적어도 70mm 이상의 준망원렌즈는 좋은 단풍사진을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망원렌즈는 단풍의 잎 그 자체를 돋보이게 합니다.
(그렇다고 꼭 망원렌즈가 만능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뒤에 건물이나 피사체를 함께 프레임에 두고 싶다면 광각이 더 어울리겠죠.)
3. 역광이나 측광에서 찍으세요.
단풍은 각 이파리에 햇살을 한아름 머금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과감하게 역광을 선택하거나 옆 측광의 사진을 찍으세요.
단풍이 더 찬란해집니다. 직광으로 해를 등지고 찍으면 단풍이 조금 단조로워집니다.
4. 노출보정과 여백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단풍사진에서 노출보정은 필수입니다. 하이라이트를 표현하기 위해서 대개 -1이상 정도의 노출보정을 합니다만,
아주 가끔은(역광을 찍거나 할 때) +1 이상 노출보정도 필요하답니다. 그때 그때 확인하면서 찍으세요.
또하나 단풍사진에서
여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프레임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답답한 사진은 금물~
최대한의 여백을 살리면서 찍어 보십시오.

위 tip은 지극히 개인적인 힌트이므로 참고만 해 두세요. ^^

- 캐논20D / EF135mm F2.0L(노출보정 -1) -



- 캐논20D / EF24-70mm F2.8L(노출보정 -2/3) -



- 캐논20D / EF135mm F2.0L(노출보정 -1) -



- 캐논20D / EF24-70mm F2.8L(노출보정 +1) -

 

- 캐논20D / EF24-70mm F2.8L(노출보정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