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4일.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09시 45분 KTX 열차안.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09시 45분 KTX 열차안.
KTX를 타 본지가 얼마만인지 기억도 가물합니다. 장마와 태풍 '메아리'가 겹쳐 차창 밖에는 쉼없이 비가 흐르고 제 속도에 못이겨 휙휙 지나가는 나무며 난간이며 길이며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서울에서 부산, KTX 직통은 정확히 2시간 17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세상이 참 좋아졌지요. 예전엔 부산 한 번 나들이 하려면 너다섯시간은 족히 기차를 타야 가능했는데 역시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번 부산 여행은 출장의 몫이 큽니다만, 부산에서 일을 보는 시간은 두어시간도 되지 않을 것이니 간략히 해운대 한 번 돌아볼 요량입니다.
열차가 부산역에 도착하기 전.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갛게 얼굴을 내밉니다. 차창 밖에 널려있는 기차들이 마치 장난감 열차처럼 손 안에 잡힐 듯 아련해 지는 곳. 한 4년 정도만에 밟은 부산역이네요. 몇 해전만 해도 부산역이 그렇게나 크게 보이더니 나이를 먹어서일까, 아님 자꾸 약아져서일까 역이 그닥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산을 괜히 가져왔나 싶을 만큼 부산의 날씨는 그냥 '흐림'이었습니다. 저쪽 하늘은 검게 먹구름을 토해 내고 있는데 부산역 하늘은 푸른 색깔을 듬성듬성 보여줄 만큼 변덕을 부렸습니다. 그럼 그렇지. 터널을 하나 지나니... 바로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일행이 아는 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 갑니다. 달맞이 고개를 넘어 해월정사라는 조그만 암자(?) 맞은 편에 위치한 '향유재'란 식당입니다. 어느 해 부턴가 고등어조림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외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점심 때에는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한다네요. 식당에 도착하니 역시나 먼저 반기는 건 안개. 오후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안개가 자욱한 부산 해운대의 풍경은 처음인 듯 합니다. 안개 자욱한 바다를 배경 삼아 해물파전과 고등어조림, 막걸리 한 통을 시켜놓고 풍류를 즐기듯 식사를 마칩니다. 해물파전의 맛은 담백하고 고소했고 고등어 조림은 생선이 신선한 탓일까, 개운하고 깔끔했습니다.
점심도 먹었겠다... 잠시 출장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러 작은 사무실을 들른 후 두어시간만에 후딱 일을 마쳤습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도 없이..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을 산책하자 결정을 합니다. 아.. 지독한 안개. 오후 2시가 지난 시각임에도 마천루에는 자욱한 안개가 건물을 통째로 삼켜버릴 기세였습니다.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의 건물들은 지은지 오래되지 않아 깨끗해 보입니다. 동백섬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여기저기 사진을 들이대며 안개만 연신 담아 냅니다. 이넘의 안개, 언제쯤 걷히려나.
궂은 날씨에 안개까지 잔뜩 피었으니 해운대 해수욕장에 사람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줄기차게 찰랑대는 파도 소리가 안개와 엇박자를 내며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올해는 날씨가 더워서 예년보다 1개월이나 먼저 해수욕장을 개장했다는데 휴가철이 아닌 탓인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더군요. 해수욕장 모래밭을 한참이나 걷다가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인근 오징어회를 잘한다는 집엘 찾아갔습니다. 식당 이름은 '하얀집'. 저녁 6시부터 영업이 시작된다기에 한참을 주위에서 서성이다 들어간 식당. 이곳의 회는 특이하게 거의 다진 듯 나옵니다. 큼직한 오징어 회를 예상하셨다면 땡~! 마늘 다지듯 섬세하고 예리하게 다진 오징어가 이 식당의 단골 메뉴라 합니다. 회 맛은 싱싱함 그 자체. 이 참에 쐬주도 한 잔 걸치고.. 얼큰하게 붉어진 얼굴로 기분좋게 웃습니다. 아 이제 서울로 돌아갈 시각.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역으로 이동.
금요일 저녁이어서 표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다행히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했으니 표 걱정은 없습니다. 서울로 올라 오는 길, 밖에는 연신 비가 뿌리고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기 자리에서 머리를 기대고 잠자리에 듭니다. 취기가 올라온 김에 저 역시 쪽잠을 청해 봅니다. 부산 해운대... 당분간 안개만 기억날 듯 합니다. ^^
+ 촬영 : 후지 FineFix X100 +